Azure nacre :: Azure nacre

 

-무사는 내 전 연인의 이름이다. 나를 만나기 전의 무사는 내 친구의 연인이었다. 내가 알기로 무사는 늘 누군가의 연인이었다. 그녀는 연인들을 떠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주에 영원한 것은 없어."

나도 그 영원한 진리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이번에 그 말을 한 사람은 나였다.

 

 

-"라슬로 수상 소감이 진짜 인상적이더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표정으로 무사가 말했다. 무사는 뭔가에 푹 빠질 때 아련하게 눈이 빛났다. 그럴 때 무사의 눈은, 잊고 있었지만 그리운 것을 담고 있는 거울 같았다. 나는 무사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 모습을 좋아했다.

"뭐라고 했는데?"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가라면? 그 작가의 책은 읽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존경할 것이다.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연인이라면?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연인이 그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지칠 것이다. 그 일을 영원히 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헤어지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랑은 이 세상의 많은 일들에 반대하게 만들어. 반대하는 힘이 한 사람의 진짜 힘이야.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반대자가 될 거야. 사랑해.'

우리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무사가 나에게 준 크리스마스카드에 적힌 문구였다. 내가 그 문구를 읽고 있을 때 무사는 내 어깨에 두 다리를 올려놓은 채 웃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무사의 발목에 오래 키스했다. (발목은 무사의 몸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무사에게는 어려서 발뒤꿈치를 들고 까치발로 담 밖을 내다보던, 세상을 궁금해하던 소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름다운 기억이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운 날에, 진짜로 카드 속 문장을 살아내려면 삶을 완전히 바꿔야만 한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니 기러기들아. 고니들아. 너희들이 제아무리 위기에 처해도 나에게 애원하지 마. 아무것도.

 

-내 사랑을 거부한 무사에게는 더한 말도 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힘을 빼앗고 싶었다. 내면의 불, 거의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는, 그 빛을 꺼버리고 싶었다.

 

-그때 '사랑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너 진짜 피곤하다"라고 말했다. '사랑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 찾아봐"라고 말했다.

"그것이 나의 고독이야. 다른 사람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고독. 왜 다 똑같은 거야? 그런 고기는 먹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왜 없는 거야?"

'사랑해' 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넌 정신병자야. 강박증 환자라고!"라고 말했다. 영화 <노트북>에서는 정확히 반대로 말했다.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될게." 내 친구들은 그녀를 또라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사는 또라이가 아니었다. 무사에게 다른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무사에게 맞는 적절하고 정확한 단어-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 답답한 일이었다. "진짜 이름이 힘이래!"라고 무사가 늘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친구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나는 자유로웠다. 그런데 고통스러웠다. (...)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사를 잡았어야 했나, 두 팔로 눈을 가린 채 나 자신에게 묻곤 했다. 나는 다시 한번 고전적인 질문으로 들어갔다. '사랑을 원하나, 자유를 원하나?' 가장 위안이 되는 말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였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나는 다시 한번 시간 속에 흩어진 존재가 되어갔다.

 

-무사는 다른 사람과 절대로 헷갈릴 수가 없었다. 즉, 무사는 이 세상과 맞지 않았다. 다만 너무 아름다운 방식으로 맞지 않았다.

 

-무사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자 슬픔이 밀려왔다. 나는 무사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기 시작했다.

"무사!무사!"

얼마나 소리 질렀을까? 무사가 나타났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는 달려가 무사를 안았다. 한참을 꼭 안고 가만히 서 있었다. 서서히 슬픔이 장미 향으로 채워졌다. 서서히 슬픔이 사랑으로 바뀌었다.

 

-내가 무사 곁에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무사에게 묻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마침내 무사와 내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 방식을 찾았다는 것을.

"너는 책을 읽어. 나는 장미를 가꿀게."

 

-"너무 궁금해. 보티첼리가 한 말은 뭐였어?"

"알고 싶어?"

"응."

"아,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서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필리피노, 언젠가 나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추방당한 왕후>에서 나를 건드린 건 바로 이 문장이었다.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이것이 내가 인생에서 진짜로 원하는 것임을, 내 전 재산을 바꿔서라도 얻고 싶은 단 하나의 것임을 이 문장으로 알았다.

그림의 제목은 <추방당한 왕후>.

필리피노는 그림 밑에 한 구절을 써놓았다.

'어두움이 깊다면 거기서 잉태된 아름다움또한 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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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그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