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그울 2015. 5. 19. 14:45



8.

일지를 썼다. 냉철한 복기, 뭐 그런 게 필요했던 것 같다. 뭘 잘못 했는지, 그래서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적어놓아야 뼈아픈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수험생들은 오답노트를 만든다. 나 역시 꼼꼼하게 내 살인의 모든 과정과 느낌을 기록했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문장을 만들기가 너무 힘들었다. 명문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일기일 뿐인데. 그게 이렇게 어렵다니. 내가 느낀 희열과 안타까움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 더러운 기분이었다. 내가 ㅇ릭은 소설은 국어교과서에 실린 것이 거의 전부. 거기엔 내게 필요한 문장이 없었다. 그래서 시를 읽기 시작했다.

실수였다.

시를 가르치는 문화센터의 강사는 내 또래의 남자 시인이었다. 그는 첫 수업 시간에 엄숙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해서 나를 웃겼다. "시인은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입니다. "

그때는 이미 수십 명의 사냥감을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해 땅에 묻은 뒤였다. 그러나 내가 한 일이 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살인은 시라기보다 산문에 가깝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살이능ㄴ 생각보다 번다하고 구질구질한 작업이다. 

어쨌거나 그 강사 덕분에 시에 흥미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나는 슬픔은 느낄 수 없도록 생겨먹었지만 유머에는 반응한다.


금강경을 읽는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킬지니라."


나는 꽤 오래 시 강좌를 들었다. 강의가 실망스러우면 죽어버리려고 했지만 다행히 꽤나 흥미로웠다. 강사는 여러 번 나를 웃겼고 내가 쓴 시를 두 번이나 칭찬했다. 그래서 살려주었다. 그때부터 덤으로 사는 인생인 줄은 여태 모르고 있겠지? 얼마 전에 읽은 그의 근작 시집은 실망스러웠다. 그때 그냥 묻어버릴 걸 그랬나.

나 같은 천재적인 살인자도 살인을 그만두는데 그 정도 재능으로 여태 시를 쓰고 있다니. 뻔뻔하다. 





86.

내 고향 앞길은 벚꽃이 좋았다. 일제시대에 심은 그 벚나무 터널아래로 봄이면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나는 부러 그 길을 에돌아 다녔다. 꽃을 오래 보고 있으면 무서웠다. 사나운 개는 작대기로 쫓지만 꽃은 그럴 수가 없다. 꽃은 맹렬하고 적나라하다. 그 벚꽃길, 자꾸 생각난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그저 꽃인 것을.



 

115.

작곡가가 악보를 남기는 까닭은 훗날 그 곡을 다시 연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악상이 떠오른 작곡가의 머릿속은 온통 불꽃놀이겠지. 그 와중에 침착하게 종이를 꺼내 뭔가를 적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야. 콘 푸오코 con fuocoㅡ불같이, 열정적으로ㅡ같은 악상기호를 꼼꼼히 적어넣는 차분함에는 어딘가 희극적인 구석이 있다. 예술가의 내면에 마련된 옹색한 사무원의 자리. 필요하겠지. 그래야 곡도, 작곡가도 후대에 전해질 테니까.

악보를 남기지 않는 작곡가도 어딘가에 있겠지. 절륜한 무예를 아무에게도 전수하지 않고 제 몸 하나 지키다 죽은 강호의 고수도 있었을 것이다. 희생자의 피로 쓴 시, 감식반이 현장이라고 부르는 나의 시들은 경차서 캐니빗에 묻혀 있고.




 

116.

미래 기억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지금의 내가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바로 미래이기 때문이다. 수십 명을 살해한 과거는 잊어도 좋다. 나는 오랫동안 살인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미래, 즉 나의 계획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의 계획 : 나는 박주태를 죽일 것이다. 이 미래를 잊는다면 은희는 그놈 손에 처참하게 살해될 것이다. 그런데 알츠하이머에 걸린 내 뇌는 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오래전 과거는 생생하게 보존하면서 미래는 한사코 기록하지 않으려 한다. 마치 내게 미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앟는ㄴ다고 거듭하여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계속 생각하다보니 미래라는 것이 없으면 과거도 그 의미가 없을 것만 같다.

오디세우스의 여행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오디세우스는 귀환을 시작하자마자 연을 먹는 사람들의 섬에 기착한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권한 연 열매를 먹고 나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부하들도 모두 잊어버린다. 무엇을? 귀환이라는 목적을 잊어버린다. 고향은 과거에 속해 있지만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계획은 미래에 속한다. 그후로도 오디세우스는 거듭하여 망각과 싸운다. 세이렌의 노래로부터도 달아나고 그를 영원히 한곳에 붙들어두려는 칼립소로부터도 탈한다. 세이렌과 칼립소가 원했던 것은 오디세우스가 미래를 잊고 현재에 못박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끝까지 망각과 싸우며 귀환을 도모했다. 왜냐하면 현재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짐승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이기 대문이다. 기억을 모두 잃는다면 더는 인간이랄 수가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먹고 싸고 웃고 울고, 그러다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그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어떻게? 미래를 기억함으로써, 과거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

그렇다면 박주태를 죽이겠다는 나의 계획도 일종의 귀환이 되는 셈이다. 내가 떠나왔었던 그 세계, 연쇄살인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그리하여 과거의 나를 복원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래는 이런 식으로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애타게 그를 기다리는 아내가 있었다. 내 어두운 과거 속에서 나를 기다리는 이는 누구인가? 내 손에 죽은 자들, 대숲 아래 잠든 채 바람 거센 밤마다 웅성대는 그들일까. 아니면 내가 잊어버린 그 누군가일까.

 





밤에 읽고 새벽에 악몽을 꿨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