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앞에서 인간은 모두 난장이가 아닐 수 없다
그 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난장이로 태어난 아이를 기를 여력이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아이를 숲에 버리고 왔지만 아이는 그때마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다시 난장이를 업고 숲으로 갔다. 더 먼 곳으로, 더 깊은 숲 속에 아이를 버리기 위해서였다. 늘 그랬듯, 아버지의 등에 업힌 아이는 조금씩 빵 부스러기를 흘리며 갔다. 하지만 그날은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새들이 아이가 떨어뜨린 빵조각을 모두 쪼아먹었기 때문이다. ㅡ 샤를 페로의 동화를 곡으로 만든 모리스 라벨 역시 150cm 남짓한 단신이었다고 전해진다.
오보에의 슬픈 전율과, 곡 중의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 나는 숲 속에 홀로 남겨진 난장이처럼 어둠 속에서 그녀를 생각한다. 그녀는 살아 있을까? 아니면 이 쓸쓸한 세계의 어딘가에서 깊이... 깊이 잠들어 있을까. 깊이 잠든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 줌의 부스러기도 보이지 않는 깊고, 깨끗한 어둠이다. 그런데... 그런데 저도 ...
전화를 걸고 싶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아니 그것이 그녀의 목소린지, 나의 기억이 만들어낸 환청인지도 지금은 불분명하다. 어쩌면 나는 새들의 배설물이라도 찾아 숲을 뒤지는 밤의, 숲 속의, 난장이일지도 모른다. 주머니 깊이 두 손을 찌르고 서서 나는 멍하니 음악을 듣는다. 음악이 그리는 샤를 페로의 동화를 떠올리며 지나간 나의 과거를 생각해 본다. 문득 돌아갈 수 없는 나 자신이, 그래도 돌아가야 하는 나 자신을 업고 있는 기분이다. 더없이 무거운 걸음으로 나는 책상 앞에 다가선다. 그리고 한 줌의 부스러기도 남아있지 않은 그해의 겨울을 다시 생각해 본다. 덧없이 짧은 겨울이었지만
아마도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겨울이었을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