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을 삶으로 끌고 가지는 마라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전경린
나는 아직 나이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 얼마 되지 않은 내 경험 속에서 나이의 양과 성격을 가늠하곤 했다. 경험하지 못한 나이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사실 이해마저도 피상적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노련한지 혹은 서툰지, 얼마나 늙었는지 아니면 아직 젊은지, 얼마나 안전한지 혹은 위험한지, 생에 대해 진지한지 기만적인지, 혹은 냉소적인지, 그리고 나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 모든 것이 늘 오리무중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 대한 머뭇거림과 불안과 소극적인 수긍으로......
나의 턱을 받치며 가볍게 쥐던 한결 더 어른스럽고 유연한 손. 케이크의 냄새와 풀잎 냄새, 그리고 연기 냄새와 희미한 셰이브로션 냄새, 종이 냄새… … 어릴적 아버지의 손이었지만, 짧은 한 시기 이후 영영 잃어버린 손.
나의 관용구란 침묵이었다.
A는 극광 aurora, B는 방랑 Bohemian life, C는 열등감 complex, D는 사막 desert, E는 실존주의 existentialism, F는 여성적인 feminine gender, G는 죄 guilt, H는 휴가 holiday, I는 이념 ideology, J는 야누스 Janus, K는 칼 knife, L은 왼손잡이 left hander, M은 생리 menstruation, N은 니체주의 nihilism, O는 구름다리 overpass, P는 소통 passage, Q는 질문 question, R은 비 rain, S는 우주 space, T는 유혹 temptation, U는 이상주의자 utopian, V는 순결한 처녀 virgin, W는 권태 wearness, X는 황색인종 xanthous, Y는 젊음 youth, Z는 영 zero……
A는 무정부주의자 anarchist, B는 복서 boxer, C는 절정 climax, D는 운명 destiny …… E는 황홀 ecastasy, F는 자유 freedom, G는 게릴라 guerrilla, H는 심장 heart, I는 환상 illusion …… J는 징크스 jinx, K는 부엌 kitchen, L은 좌파 leftist, O는 아웃사이드 outside, P는 개성 personality, Q는 정적 quiet, R은 회상 recollection, S는 고독 solitude, T는 재능 talent, U는 미확인 물체 U.F.O, V는 모서리 verge, W는 날씨 weather, X는 크리스마스 X-mas, Y는 그대 you, Z는 차라투스트라 Zarathustra……
스무 살이란 아직 시간 이전에 붙박혀 있는 나이였다. 손오공이 얼굴만 내놓고 바위벽에 갇혀 있듯이, 삶이란 좀처럼 시작되지 않는다.
101.
시장 동네의 낮은 기와들과 상점들, 좁다란 길과 호객하는 상인들과 바글거리며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 위로 화약 냄새 나는 새하얀 폭염이 부서져내리고 있었다. 바다조차 고열로 타오르는 사막처럼 건조하게 보였다.
뒤섞인 상인들과 행인들을 골똘하게 내려다보고 있으니 가슴이 얼얼해졌다. 누구나 구체적으로 살고 있었다. 삶을 손으로 잡고 피부로 느끼고 맛을 본다. 중력을 어깨에 지고 두 다리로 정직하게 나르며… … 나만 추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실제로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죽음을 등진 채 덧없이 여름을 낭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죄책감은 달콤할 우울 정도일 뿐이었다. 실제로 할머니의 간호를 하는 일은 슬픔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일종의 싸움이니까. –박범신의 당신 이 생각이 난다. -
나와는 아주 다른 착한 여자애를 상상해보았다. 그 여자애는 병든 할머니의 기저귀와 옷들을 씻어서 뜨거운 솥에 삶고 얼룩 한 점 없이 헹구어 꼭꼭 짠 다음 빨랫줄에 펴넌다. 매일 이불을 번갈아 일광욕시키고 세 번씩 방을 환기시키고 두 번씩 방바닥 걸레질을 한다. 수건을 물로 적셔 자주 할머니의 몸을 닦아주고 짧게 자른 머리카락도 감겨주고 안마를 해준다. 손톱과 발톱도 길지 않은지 점검하고 자주 깎는다. 악취가 풍기는데도 불구하고 곁에 앉아 불경을 읽어주거나 신문을 읽어주고 이런저런 바깥 이야기를 전해준다. 하루에 세 번쯤 더러운 기저귀를 차고 죽어가는 할머니를 꼭 안아준다. 할머니와 여자아이의 틈새에서 벌레가 꼬물꼬물 기어나온다… …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다. 언젠가 아픈 할머니를 두고 유기한 벌을 받을 것이다. 죽어가는 할머니를 버리고 도망 나와 뜻도 알 수 없는 대사들을 목이 쉬도록 외치며 온몸의 수분을 다 짜내고 있는 나… … 통증이 더 확실해졌다. 나는 가슴에 손바닥을 대고 눌렀다. 어쩌면 삶이란 꿈 없이 사는 것이 아닐까. 사는 것 자체에 빚지는 삶… … 나날이 조금씩 갚아가는 부채의 탕감에 기대어 사는 삶. 나는 집 밖에서, 세상에 없는 것을 헛되이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108.
오후 내내 감포에서 양포를 지나 칠포로 이르는 동해안길을 따라 발에 물집이 생기도록 걷기만 했었다. 바닷가 길을 따라 걸으면서 성재는 틈틈이 노래를 불렀었다.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 하네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력 어둠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그날 밤 우린 영덕 근처의 바닷가 모텔에서 이부자리 두 채를 나란히 펴고 길 떠난 두 벗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쉽게 잠이 들었다. 발이 퉁퉁 부은 채로. 잠들기 전까지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때론 시적이고 때론 지나치게 심각하고 가끔은 우스꽝스럽고 공허했다.
마지막엔 숫자와 색채에 관한 심리놀이를 했다. 나는 4와 8과 9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4는 사각형, 사계절, 물 불 공기 흙, 사원소의 숫자로 세상을 이루는 구조적 숫자라고 했다. 8은 다시라는 의미라고 했다. 신의 은총에 의해 인간이 다시 태어나는 것도 팔 일째였고 재생과 새로운 출발의 숫자라고. 그리고 9는 배수가 언제나 9로 돌아오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멸성의 숫자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주홍색은 억눌린 열정을 뜻하고, 초록색은 시작의 설렘을 뜻하며 보라색은 열정이 지나가버린 뒤의 저 너머를 뜻한다고 했다. 나의 생일로 미래를 점쳤는데, 오랜 뒤에, 마흔 살쯤에 가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172.
“이 밀리미터 빗방울은 공처럼 둥글고 그보다 큰 빗방울은 기압에 눌려서 가로로 퍼진대. 그래서 햄버거같이 납작한 모양이 되는 거야. 그리고 빗방울이 팔 밀리미터 이상인 경우는 기압이 구멍을 뚫기 때문에 낙하산처럼 공중에 떠다니면서 천천히 땅 위에 떨어진대. 아쉽게도 눈물 모양 빗방울은 없어.”
영신은 빗방울 전문가처럼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결연한 어투로 말했다.
“선생님이 돌아와도 이제 연극 따윈 하지 않을 거야. 자칫하다간 인생에서 연기를 하게 될 테니까. 연기와 인생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어. 이번에 연극을 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정해진 대본으로 연기를 한다는 걸 깨달았어. 서로 대본을 모르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어서 어긋나거나 스치고 말아. 말이 안 통하네, 마음이 안 통하네, 이해가 안 되네, 수준이 다르네 하면서. 너의 대본에 대해 나는 몰라,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서로의 대본을 알면 어떻게 되는지 하니? 자기가 아는 대본대로만 연기하도록 요구하는 거야. 서로를 자기 대본 속에 가두려고 혈안이 되는 거야. 대부분의 남자와 여자는 평생 하나의 대본의 틀 속에서 갇혀 살아가. 같은 대사, 같은 동선, 같은 감정을 연기하면서...... 정말 끔찍한 감금 아니니? 난 뻔한 대본 속에 갇히지는 않을 거야. 진짜 삶을 살 거야. 진짜 삶은 조각조각 찢긴 대본처럼 불안정할지 모르지만, 그건 자신에 대한 발견이야.
죽었다 깨어나도 이 세계와 타인과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와의 소통조차 평생이 걸려도 쉽지 않지. 난 어떻게 사느냐, 무엇이 되느냐, 누구를 사랑하느냐보다는 나 자신과 소통하는 데에 관심이 생겼어. 넌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이 세계와 타인과 자기 사이의 한계를 어느 정도 알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드는 법이지.”
영신은 탐험가처럼 말했다.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 채 그녀가 탐험할 미지의 대륙을 바라보았다. 영신은 한 순간 눈을 커다랗게 뜨며 팔과 다리를 좍 벌렸다가 오므렸다. 그리고 깔깔깔 웃어댔다.
작가의 말
이 세계와 나, 타자와 나의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고독해지고,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담담해진다.
왜 사느냐고 묻기 전에 우리는 이미 내던져졌고, 어떻게 살 것인가 묻기 전에 우리는 이미 변경할 수 없는 인과를 살고 있다. 그리고 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것 … … 우린 불완전한 채로 생의 부름에 응답하며 최대한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