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

내가 이렇게 힘들었구나

그울 2018. 3. 11. 23:24

-좌절 때문에 생기는 감정 중 하나가 불안입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예측할 수 없게 되면, 자기 통제력이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겁니다. (...) 사람들이 불안감을 많이 느끼면 불안을 줄이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중 하나가 외형적인 기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두 눈으로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들에 집착하는 거지요. 자신의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획일적이고 단순한 것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문장으로 멋진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과 사별을 했어요. 그 작가 왈, "예전에는 소설 심사를 하다 보면 작품에 빠져 정신없이 읽었는데, 요즘에는 자꾸 오탈자만 눈에 들어옵니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을 해결해 자기 통제감을 느끼려고 하게 됩니다. 

불안한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은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집안 가구를 다 바꾸고 이불 홑청까지 뜯어서 빤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통제 가능한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투입하는 경우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격증에 집착하는 것도 불안이 반영된 현상입니다.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로 자신의 불안을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가만히 있는 순간을 자신에게 허용하기 힘들어진 겁니다. 

(...) 우리 사회는 오랜 상처와 좌절로 인한 불안 때문에 단순해져가고 있습니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몇 가지 직업 이외에는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 속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면 자유로워집니다. 나에게 이런 욕구가 있었구나. 내가 이렇게 힘들었구나. 를 깊이 인지하는 순간 자신에 대한 여유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한없는 연민을 가지게 됩니다. 마음속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약한 감정을 안아주고 싶어집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 좌절하거나 불안할 때 다른 일에 몰입하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직면하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한계를 맞게 됩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도리어 비수가 되어 되돌아오게 되지요. 그러므로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안전하고 본질적이고 깨끗한 방법은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가장 강력한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앞서 자신에게 집중해서 자신의 본질을 느끼고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때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이 모두 필요합니다. 

방금 질문하신 분은 (특별한)사연이 없었다고 하셨는데요. 이 세상에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연 없이 무기력한 감정이 들 순 없지요. 본질적으로 사연이 있는데 그것이 너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삶에 만연해 있어서 사연이 없다고 표현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현미경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구체적인 좌절의 경험과 기억들을 따라 들어가서 생생하게 느끼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구체적이지 않은 감정들만 보면 누구나 마찬가지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더 깊은 상처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에 따라 줌아웃해서 전체적으로 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야 할 때 '에이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데 뭐' 하면서 본질을 흐리거나, 멀리서 봐야할 때 '다 내 탓이지 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냅니다. 그래서 현미경으로 봐야 할 문제를 망원경으로 보는 건 아닌지, 혹은 그 반대는 아닌지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미투 운동의 발화자들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

가령 아이가 사춘기라 예민하다면서 아이의 문제를 일반화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 또한 문제에 맞는 접근법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제 딸아이는 관계에 대한 욕심이 좀 많은 편이에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욕구가 많고 혼자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딸아이가 초등하교 시절 우연히 학교 앞에서 만났는데 친구들 가방 네다섯 개를 지고 있더라고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으니까 비위를 맞추느라고 그러는 거였어요. 제 생각에는 '왜 저렇게까지 비굴하게 굴까, 혼자 노는 방법도 배웠으면 좋겠는데' 싶더라고요. 하지만 딸아이의 성정이 워낙 관계를 좋아하고 즐기는 아이라서, 14-15세까지 이 문제로 또래 집단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는 결국 스스로 견뎌 내고 버텨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널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지만 네 행동과 상관없이 우리는 너를 한결같이 지지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한 10여년은 그렇게 한 것 같아요. 그렇게 너무 몰두하지도 않고 너무 개입하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고 다만 "우리가 보기엔 네 행동이 이렇게 보인다, 엄마의 생각과 마음은 이렇다'라는 표시만 던져 놓았습니다. 

그동안 딸아이는 이런 마음도 받아먹고 저런 마음도 받아먹으면서 이렇게도 지내보고 저렇게도 지내보면서 지금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서도 굉장히 잘 지내요. 여전히 친구 관계는 굉장히 좋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저는 부모로서의 덕목 중 하나가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아이가 나와 비슷할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는데 기본적인 자세는 비난하지 않고 항상 포용하고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저렇게 생각하네"정도로 말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아이는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통하게 됩니다. 

저는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영향의 총합보다 더 많은 영향을 부모로부터 받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부모가 이렇게 바라보면 세상도 이렇게 바라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부모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세상의 어떤 태클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봅니다.결국 아이들이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고 겪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리를 두고 개입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으셨지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모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적어 보세요. 그러면 문제가 더 분명해지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사람의 무의식에는 본능적인 건강성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잘살 수 있는 쪽으로 선택하게 돼 있다는 거예요. 의식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지만 무의식에는 내가 잘 살려면 저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거죠. 이 말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성공적인 삶, 만족스러운 삶,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겁니다. 


-미성년자가 아닌 다음에야 열등감이든 불안이든 무기력이든 자기 자신이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들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다만 언니가 자신의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못났든 잘났든 나한테는 언니다'라고 하면서 끊임없이 애정을 전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과도하게 염려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반치료적인 태도입니다.

언니도 이제 30대가 되었다, 언니도 이런저런 경험을 해 봤으니까 언젠가는 극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줄 것이 있다면 얘기해라, 이런 식으로 거리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좌절은 나쁜 게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좌절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보면 좌절을 많이 하는 것이 오히려 살아가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좌절을 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좌절을 직면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아셔야 하고요. 

그래서 좌절했을 때 누군가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충분히 감정을 공유하시면서 조력자로 삼길 바랍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좌절했을 때는 그 사람 감정과 함께 머물러 주세요. 그렇게 함께 공감해주고 인정해주기만 해도 그 사람은 사지에서 나올 수 있어요. 자살 시도를 한 사람에게 정신과 의사가 어떤 식으로 자살하려고 했느냐, 목을 매려고 했으냐, 하고 구체적으로 물어봐요. 그럼 목을 매는 방법은 아느냐, 하고 또 묻고요. 그러면 그 사람 보호자는 왜 다시 상처를 주느냐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묻다 보면 치료받는 사람은 '저 사람은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좀 아네'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죽으려고 했는지 막 이야기를 해요. 이렇게 충분히 이야기하다보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꾸나'하면서 팽팽하게 올라왔던 불안, 초조, 두려움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김이 좀 빠집니다. 그만큼 충동의 정도도 줄어들지요. 

우리는 보통 누군가가 죽고 싶다고 하면 왜 죽으려고 하냐, 죽을 힘으로 살아야지.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내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음에 절망합니다. 그래서 결국 자살 시도를 합니다. 죽고 싶다는 충동을 소중한 누군가에게 털어놨는데 상대방이 회피하거나 외면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강력한 치료는 좌절에 같이 머물러 주고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고 때론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네 얘기를 듣다보니 내가 너무 가슴이 아프다. 네가 그동안 그런 마음으로 살았구나, 내가 몰랐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치유적인 도움의 핵심입니다. 또, 좌절을 느낄 때 치유자적인 느낌이 드는 사람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세요. 그렇게 하면 좌절은 더 이상 좌절이 아닙니다. 


짝짝짝


'우리 시대 멘토 9인이 전하는 좌절 극복과 진짜 공부 이야기 ' 중 정혜신 심리학자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