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House (2012)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작품은 처음이지만, 그의 명성을 따라 많이 기대했다. 여느 영화를 보듯 아무 사전 지식 없이 보기 시작한 점이 영화를 끝마칠 때 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게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조건에 의해 스트레이트로 보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생각보다 더 치밀하고 치명적이었다. 장르를 뭐라 이름지을 수 있을까. 이런 파격을 내세운 오묘한 느낌이 좋다. 명확한 교훈 따위 얻지 못해도 괜찮다. 앞부분은 다소 느슨했지만, 뒤로 갈수록,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서 탄성을 자아내는 이런 이야기가 흔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는 어쩌면 문학 선생님 제르망처럼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클로드의 상식을 깨는 욕망의 행동을 무의식 속에 갈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들에게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순리와 도덕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는가? 불안정함을 달래는 자기 위안의 도구이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 불안정함을 즐길 자세가 되어있지 못해서이지 않을까. 제르망의 부인이 변태적 취향의 갤러리를 열고 어쨌든 자신은 만족하듯, 사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는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기호에 달린 일이다. 내가 클로드의 또라이 기질에 찬사를 보낸다기보다는, 가정 파괴범을 옹호한다기 보단, 앞으로의, 그리고 지난 이야기는 오직 당신 것이라는 거다. 결국 당신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하나의 소설이 한 장, 한 장 노트에 새겨지고 그것을 이 영화의 관객과 같은 사람들이 훔쳐보게 되겠지. 그들의 평가가 어떻든 소년의 펜을 멈출 수는 없다. 이미 시작되었으니.
_last scene
여기서 모든 창문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재미있네요.
상당히 인상적이지.
라파의 공원에 앉아 있었을 때, 저는 맨 앞줄에 앉아 있는 관중 같았어요. 바라보면서 궁금했어요. 저런 집에 사는 삶은 어떨까? 저기 봐보세요. 저기 두 여자들이요. 뭘 하고 있을까요? 알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아니.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자매야 아마도. 유산에 대해서 싸우는 중이야.
레즈비언들이 깨지고 있는거에요.
쌍둥이 자매들이 가족 집 때문에 싸우고 있는거지. 한 명은 팔려고 하고 한 명은 안 돼 라고 말하고.
레즈비언이에요. 금발이 그녀의 류머티즘 의사에게 작업을 걸자 그들의 사랑이 깨졌어요. 갈색 머리가 말해요. "너한테 소개 해줬었잖아!" 그녀의 손을 보세요. "너한테 소개 해줬었잖아! 이제서야 왜 나를 같이 안 데리고 가는지 알 것 같네."
"말도 안 돼. 우리는 집 못 팔아. 아빠가 지키려고 엄청 싸웠었잖아!"
쌍둥이를 더 좋아해요?
별로.
첫째 층 오른쪽이요.
잊어버려 클로드. 저들이 수학 수업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아.
그들은 반드시 언젠가는 뭔가가 필요해요. 항상 들어갈 방법은 존재하죠. 모든 집에 들어갈 방법은 있어요. 저를 도와줄 수 있죠?
제르망 선생님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의 아내, 그의 직업. 하지만 난 거기에 있다. 그의 옆에
그에게 말 할 또다른 스토리가 준비되어 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