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게 컸어? 밈 유행의 원천지. 정서경 작가의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보셨다면 각본집을 추천한다. 맨 뒤에 실린 '작가와의 인터뷰'가 무척 흥미롭다.
-특히 제가 좋아한 장면은 그렇게 활기차던 인주가 인경과 돈을 두고 대립하며 "그때 가슴에 새겨졌어. 돈이 없으면 죽는다. 난 아버지가 도둑질을 해서라도 집에 돈을 가져왔으면 했어. 우리가 먹고 우리가 살고 우리가 죽지 않게. 사람은 가난하면 죽으니까." 라고 하는 장면이에요. 저는 그게 이 캐릭터의 가장 밑바닥이라고 생각했어요. 방금 전까진 꽃잎 같고 풀잎 같았는데 별안간 돌덩어리 같아지죠. 인주는 너무나 관계 지향적인 사람인데, 그때 인주가 내린 결정은 자기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 내린, 건드릴 수 없는 것이에요. 그때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인주가 너무 좋았어요.
-엄마가 아이에게, 한 인간에게 미치는 힘은 측량할 수 없는데, 저는 아이를 직접 낳아 기를 때까지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그냥 내가 내 힘으로 자라고 생존했다고 생각했죠. 아이들이 아기일 때는 제가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돌보지 않으면 아이들이 죽어요. 실제로 죽어요. 그렇기에 아이들은 전적으로 제게 의존하죠. 제가 사랑하지 않으면 죽을 테니, 사랑받으려고 하면서요. 그것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인생의 시작이고, 몸에 새겨져 있는 감각인 거예요. 저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죽는다. 엄마로부터 떨어져 나온 후에도 사랑과 공포에 대한 감각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죠.
(...)
사실 많은 이야기가 엄마가 죽으면서 시작하거든요. 말 그대로의 죽음이 아니라, 내가 의지하고 있던 존재와의 결별, 따듯하고 안전한 곳에서 떠나오는 시작 말이에요. 이야기는 원래 이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아가씨>를 쓰면서 느낀 건, 여성은 성장할 때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아이인 동안에는 엄마를 필요로 하지만, 자기 아이를 갖게 되고 그 아이를 돌본다고 생각할 때는 내가 그 아이에게 가장 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엄마가 더 이상 필요 없어져요. 그때 엄마라는 존재는 상징적으로 죽는 것이죠.
(...)
저는 글을 쓰면서 제가 엄마와 대결하면서 성인 여성이 되어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엄마처럼 완벽한 여자가 될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엄마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저희 엄마는 우리 세대 많은 엄마가 그러했듯이 전통적인 어머니였어요. 요리도 잘하고 따듯한 잠자리도 만들어주면서 아름다웠죠. 완벽한 엄마였지만 저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고, 엄마에게 나 말고 엄마의 삶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랐어요.
(...)
저는 원래 할머니 캐릭터를 정말 좋아해요. (...) 이를테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유바바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도라 같은 캐릭터는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은데 굳이 어린 아이를 상대해줘요. 늘 싸워주고, 늘 진단 말이에요. 세상에서 자기 삶으로 가져온 지혜, 꾸깃꾸깃 모아 놓은 돈과 보석,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가 가장 어린 세대와 싸워서 지고 뭔가를 베풀며 떠나주죠. 그래서 전 이런 할머니 캐릭터들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요. 그들의 특징은 살면서 꾸려온 많은 것들, 지혜와 힘, 욕심과 고집, 그리고 퇴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혜석은 처음부터 중간 퇴장이 예고된 캐릭터였고, 그전까지 자기가 가진 것들을 전수해줘야 했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병원비를 내주는 순간 시청자들이 이 할머니를 너무 사랑하더라고요. (웃음) 죽이면 혼날 것 같아 전전긍긍했지만, 세 자매가 자신들의 힘만으로 싸워야 했기 때문에 할머니의 퇴장은 극적인 전환점으로서 꼭 필요했습니다. 근데 저는 혜석할머니 가고 나서 드라마에 대한 흥미가 급감했어요...... 어쩔거예요........ 자매들이 아무리 잘 싸운다 해도 시청자들이 안보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인주는 연약한 모습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를 지지해줄 강인함과 지능이 필요했고, 그래서 도일을 줬죠. 인경이는 자신의 목적에 돌진하느라 주변 사람들은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그걸 알려줄 종호가 필요했고요. 인혜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다른 얼굴이었어요. 사춘기 때 우리가 발견해야하는 것이 또 다른 자기 자신이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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