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불면에 시달리다 못해 해골과 같은 얼굴로 대학병원까지 찾아간 뒤에야 강토 형은 자신의 그 고통은 다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아픈 것이라는 걸, 그리고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없으리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강토 형이 찾아가게 된 사람이 바로 무공 아저씨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내가 말끔하게 고통을 덜어줬지.”
“어떻게요?”
내가 물었다.
“순리대로 사는 게 바로 이 우주의 비밀이지. 잠이 오지 않는다면, 안 자면 되는 거야. 꼭 자야 할 필요는 없어. 죽은 사람이 자꾸 눈에 보인다면, 그냥 눈을 감으면 되고, 보고 싶을 때는 눈만 뜨면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까 좋은 거 아닌가?”
“그게 치료법인가요? 지금 제 불면증도 그렇게 고치신다는 얘기인가요?”
“치료법은 아니야. 병이라고 꼭 치료해야만 하는 건 아니야. 병을 달고 산다는 말도 있잖아. 병도 생명의 일부야.”
“그래서 강토 형은 아저씨를 만난 뒤로 병을 달고 살게 됐다는 말씀인가요?”
“아니. “
무공 아저씨가 말했다.
“강토는 병을 껴안고 살더라.”
강토 형과 내가 서로를 끌어당길 정도로 닮았다면, 그렇다면 나도 이제 병을 껴안고 살아야만 한다는 뜻일까?
145.
이 인생에서 내가 할 일은 더욱 내가 되는 일
151.
매일매일 사람이 달라진다니, 누구보다도 당황스러운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어느 날은 앞날이 걱정되고 너무나 불안했는데, 그럴 때 보면 나는 참 불행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은 이 세상 모든 게 너무나 고맙게 느껴져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으니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옳았다. 그 감정들 하나하나가 계곡의 자갈을 만지는 것처럼 때로는 매끄럽고 때로는 까칠했다.
152.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집중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더 느리게 숨을 쉬고, 더 많은 감각으로 이 세상을 받아들이면 그만큼 더 천천히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이었다. 시간의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일들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5월부터는 십 분 만에 뒷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건 돌이라도 씹어먹을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어느 쪽이든 나의 시간과 다른 사람의 시간이 서로 다르게 흐른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고양이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당신의 관찰이다. 그건 아빠가 내게 들려준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시간의 속도를 결정하는 게 내 호흡이라면, 가능하면 나는 아주 천천히 숨쉬기로 했다. 되도록 아주 천천히 살아가면서 세상 구석구석 숨은 의미를 모두 알아내고 싶었다.
159.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분간되지 않는 슬픔과 두려움과 기쁨과 환희가 번번이 나를 뒤흔드는 것은 그때와 마찬가지였으나, 이제는 나의 일부가 그 감정들의 화염에 휩싸여 흔들리는 동안 또 다른 나는 그 불길을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내게는 마치 두 겹의 눈이 생긴 것 같았다. 하나는 고통과 분노와 축복과 경이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현재의 젊은 눈동자였고, 다른 하나는 숨을 쉬듯이 나를 둘러싼 세계의 풍경을 가까이서 들여다 봤다가 다시 멀찌감치 물러나 관망하는 미래의 늙은 눈동자였다.
167.
나는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할 때까지 기다리고 어쩌고 하는 사람이 아니야.
174.
그러자 그가 “정희선양에게.” 하고는 중얼중얼 편지를 읊기 시작했어. 누군가의 시를 베끼고, 또 소설을 베껴서 만든 문장들, 하지만 자기 감정이 정확하게 뭔지도 알지 못하고 되는대로 사랑, 사랑이라고 떠들어대는 유치한 편지였어. 눈으로 읽었다면 모를까, 말하는 걸 들으니 더욱 유치했지. 솔직히 실망스러웠어. 편지를 다 읊고 나서 그가 말했지. 난 문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편지는 없어. 답장은 지금 여기서 내게 말하면 돼. 난 기억력이 좋으니까 아무리 긴 글이라도 상관없어. 기억할 필요 없어요. 답장은 없으니까요. 천재라고 들었는데, 그런 유치한 편지를 외우고 다닐 줄은 몰랐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돌아섰지 .그때 그가 내 팔을 잡았어. 내 이름은 이수형이야. 넌 내 이름을 기억해야만 해. 왜죠? 내가 물었어. 나는 유명해질 테니까. 유명해진다고요? 응,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게 될 거야. 신문마다 내 이름이 나올 거고,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야. 네게 어울리는 남자는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러니까 넌 언제나 날 기억해야만 해. 그는 나를 집 쪽으로 몰아붙였어. 앞으로 내겐 그런 멍청한 녀석들이 수없이 달려들 거야. 그때마다 방금 내게 말한 것처럼 말해야만 해. 다시 말해봐. 나는 고개를 돌리고 피식 웃었어. 정말 유치하다구요. 신문에 이름이 한 줄이라도 나면 그 말을 믿을까. 믿게 될 거야. 결국 너는 내 말을 믿을 거야. 정말이야. 우린 점점 닮아갈 테니까. 그러더니 그는 내게 입을 맞췄지. 아버지가 아직도 거실에 있는데 말이야. 나는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어. 그리고 그가 말했어. 이제 넌 내 것이니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어.
176.
서울역 플랫폼에 내려 출구로 나가기 위해 지하도 입구에 섰을 때, 범람한 강물처럼 계단을 내려가던 사람들의 모습은 내 눈을 압도했다. 내게 다시 돌아온 서울은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소망과 희로애락이 거미줄처럼 서로 뒤엉켜 한데 출렁이는 대양과 같았다. 천만 명의 사람들이 도시의 물결치는 삶 속에서도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는 걸 이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충분히 약했지만, 그들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그들을 억세고 질기게 만들었다. 그 강인함의 원천은 기차에서 그녀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사람을 우연히 만나고 또 운명처럼 재회하고, 자주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러다가 그를 사랑하고, 화상을 당한 사람처럼 사랑한 흔적을 지우지 못해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그런 이야기 속에서, 계단을 내려가려고 기다리며 나는 검거나 하얀 혹은 잿빛의 머리칼들과 모자들과 스카프들과 대머리들과 퍼머머리들을 바라봤다. 그들 모두에게도 그런 이야기 하나쯤은 있으리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이야기가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제는 나도 알겠다.
217.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없고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가을, 열일곱 살의 가을이 찾아왔다. 나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을 하늘의 종류는 다양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도 있었고, 구름이 높게 깔려 새하얀 하늘도 있었다. 지붕과 지붕 사이 손바닥만한 하늘도 있었고, 막 철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가고 난 뒤의 텅 빈 하늘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곧 비가 내릴 것처럼 낮은 하늘을 좋아했다. 비가 내리면 빗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빗줄기의 한가운데 서서 눈을 감고 듣는 빗소리도 있었고, 바닥에 엎드려 가까이 듣는 빗소리도 있었고, 혼자 자다가 깨면서 듣는 빗소리도 있었다. 처음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때,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깨진 유리처럼 날카롭게, 세밀화처럼 선명하게, 해와 달처럼 유일무이하게 내 눈과 코와 입과 귀와 몸에 와 닿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웠다. 평범해지고 나서야 나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나를 외롭고 가난한 소년으로 만들었다.
시간 없는 와중에도 몰래몰래 다 읽어낸 내가 대단하지만 그보다도
대단한 작가 김연수 책을 자꾸 찾게 되는 데에는 그의 조곤거리는 문체에, 정말 어이없지만 아름다운 플롯 때문인 걸까
그가 가진 감성의 온도가 내 그것과 딱 맞아서이기도 하고.
80년대가 배경인만큼 그 시대에서 풍겨오는 저릿한 슬픔이 성장소설 전반을 압도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나는 원더 보이를 읽으며 김연수가 연애소설에 타고난 작가임을 한번 더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수형의 남자다운 고백이 세 번 읽어볼 만큼 멋있었다는 거다. 그래서 한참 뒤에야 밝혀지는 말도 안 되는 신문 사건또한 그랬구나, 하며 수긍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은 114쪽 할아버지 집에 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밤하늘이란 짐승의 천 개의 눈인 별들을 보며
내가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테지만
그렇지만 소년에게 첫 밤하늘은 그 날의 하늘이었다며
눈을 깜빡일 생각도 못 하고 별이 입으로 다아 쏟아질 만큼 와- 하고 있을것만 같은
소년이 아빠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는 부분이었다.
나도 아빠와 함께 산책을 나가면
별이 많다고 족히 이십 초는 쳐다보고 서 있곤 하는데, 그럴 때 우리 아빠는 별 대신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내가 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우리 아빤 날 아름답고 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겠지
엄마 아빠 생각이 난다아
+
114.
주인아저씨는 다락으로 통하는 문을 열더니 검정색 케이스에 든 아빠의 망원경을 꺼냈다. 그건 지금보다 내가 더 어렸을 때, 아빠의 근육이 풋사과처럼 단단했을 때, 내 이가 반짝반짝 빛나는 새 이로 채워졌을 때의 유물이었다. 그 시절, 아빠를 따라 경기도 연천에서 하룻밤 묵고 온 적이 있었다. 귤과 감이 주로 팔릴 무렵이었다. 그날은 술 취한 취객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훨씬 전에 일찌감치 장사를 접은 뒤, 아빠는 나를 트럭에 태우고 북쪽으로 향했다. 서울을 벗어나 몇 개의 검문소를 지나자 2차선 도로 양 옆으로 눈 쌓인 들판이 펼쳐졌다. 울퉁불퉁한 아스팔트를 지날 때 짐칸에 실린 빈 과일상자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외롭게 들렸다. 혹시 살얼음이 깔려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코너를 돌 때면 아빠는 속력을 늦췄다. 몇 시간을 달린 끝에 트럭은 쌓인 눈에 포위된 듯한 서너 채의 농가 앞에 이르렀다. 그중 이라는 글자가 적힌 등을 내건 집으로 우리는 들어갔다. 아빠는 거기가 친구 집이라고 말했다. 마당 한쪽에는 솥이 내걸렸다. 장작은 이제 불길이 많이 사그라든 것처럼 보였지만, 솥뚜껑 틈으로는 하얀 김이 세차게 뿜어나왔다. 불꽃은 반대쪽 마당에도 있었다. 드럼통 속에서 이글거리는 붉은 불꽃. 몇몇은 드럼통을 둘러싸고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나는 아빠를 따라 어떤 할아버지의 영정을 향해 두 번 절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어수선한 마당을 바라보는,사진 속의 그 할아버지가 아빠가 말한 ‘친구’였다. 옆에 앉아서 곡을 하던 할머니는 우리가 절을 모두 마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가운 표정으로 아빠를 맞이하더니 내게는 자기를 알아보겠느냐고 물었다. 내가 고개를 내젓자, “인석아, 내가 널 받았는데 그 은혜를 몰라?”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얘기하는 동안, 나는 이리저리 집안을 살폈다. 난생처음 가본 상가라 바로 앞 병풍 뒤에 시체가 누워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나는 차를 타고 오는 동안 꺼져버린 위장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궁리했다. 마당 한쪽에서 낮은 자세로 꿇고 있는 국밥만이 나를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국밥을 먹고 난 뒤, 아빠는 그곳의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진 짐승처럼 아름다우니 같이 구경가자고 말했다. 우리는 농가들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걸었다. 벌판은 표백한 이불 홑청처럼 펼쳐져 있었다 밀가루를 뒤집어써 화가 난 뚱보들처럼 서 있던 짚단들. 심연처럼 어두운, 얼어붙은 개울의 표면. 자정이면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늦은 밤에 바깥을 걸어다닌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사방이 적설의 풍경이었음에도 그 밤은 내게 건기의 밤으로 기억된다. 하늘의 별빛과 땅의 눈빛이 서로 환했다. 적설의 풍경을 되비추듯 거기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은하수가 길게 펼쳐졌다. 마을 노인들에게 막걸리를 몇 잔 얻어마신 아빠는 비틀거렸다. 하지만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넘어질 듯, 미끄러질 듯 눈 쌓인 길을 걸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들판의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아빠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우리가 서있던 그 자리, 거기에서 아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빠를 흉내내어 나도 하늘을 올려다봤다. 천 개의 눈을 가진 짐승이라는 것은 밤하늘을 뜻했다. 태어나서 그때까지 나는 얼마나 자주 밤하늘을 쳐다봤을까? 모르긴 해도 수백 번은 될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 첫 밤하늘은 어쩐지 그 밤의 하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갑고 날카롭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전혀 새로운 밤하늘. 아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저 하늘을 올려다봤을 뿐이다. 그때 아빠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아빠가 울었다는 사실이다. 별들을 바라보는 척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상갓집의 건넌방에서 둘이 자고 난 다음날 아침, 아빠는 전날 밤 우리가 찾아갔던 들판으로 다시 나를 데려갔다. 당연히 하늘을 가득 메웠던 별빛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하늘에는 이마가 붉고 꼬리가 검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일 년에 두 번씩 시베리아와 일본 사이를 오가는 정기여행객들인 두루미들이었다. 그 새들의 삶과 죽음은 거기 하늘 위에 있었다. 별들과 두루미들 덕분에 들판은 어두운 밤에도, 환한 낮에도 새롭기만 했다. 그때, 아빠는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아직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와 나란히 서서 그 새들이 하늘을 날아가는 걸 지켜본 적이 있다고 내게 말했다. 곧 이 세상에 나란 사람이 태어나서 숨을 쉬고 또 울고 웃으리라는 걸 전혀 모른 채 엄마와 아빠가 바라보던 새를 ,내가 다시 아빠와 나란히 서서 바라본다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건 신기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슬프다고 해야만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두루미들은 그대로인데, 왜 엄마는 없을까? 그냥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날 다시 서울로 올라가려는데, 상복을 입은 할머니가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이라며 아빠에게 망원경 하나를 건넸다. 내가 위쪽으로 돌출한 접안렌즈를 들여다보는 동안, 아빠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결국 사람은 없어져도 모든 건 그대로 남아 있네요!” 라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는 한 번도 하늘ㅇ르 올려다보지 않았다.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네 엄마는 정말 환한 사람이었어. 밝고 환하고. 어제 우리가 본 밤하늘처럼.”
118.
아빠는 그렇게 얘기했다. 또 아빠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어제는 취해 있었다. 정말 나는 취해 있었다."
그날 밤, 아빠는 무엇에 취해 있었던 것일까? 막걸리일 리는 없었다. 그날 밤으로 돌아가자면, 아마도 별빛에, 어쩌면 슬픔에 취해 있었겠지. 주인아저씨에게 망원경을 받아드니 내 머릿속에 그 밤의 하늘이 그대로 펼쳐졌다. 그건 전날 연구소를 빠져나오면서 본 풍경과 비슷했다. 그 밤의 별빛처럼 내 앞에서 무수히 많은 눈송이들이 하얀 빛으로 반짝였다. 밤하늘의 눈송이들은 검은 우주를 가득 메운 별빛들처럼 보였다. 그때 우는 아빠의 곁에서 천 개의 눈을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와, 이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다는 꼬마전구들 같구나. 그런 생각. 결국 지구도 이렇게 많은 별들 중 하나겠구나, 또 그런 생각. 우리는 같은 별을 타고 우주 속을 함께 여행하고 있구나. 그리고 그런 생각. 그때만 해도, 내 곁에는 아빠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 혼자였다. 허공에 떠 있던 하얀 눈송이 하나하나처럼 나는 혼자였다. 아빠는 이 별을 떠났다. 어쩌면 이 우주를. 아빠 때문에 나는 외로워졌다. 외로움이란 그런 것,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불필요한 감정이었다. 이 우주에서, 지구라는 별에서 외로운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아빠는 그 답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의 그 밤처럼 이따금 아빠는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천천히 숨을 쉬면서 아빠는 뭔가를 생각했다. 아마도 전적으로 불가능한 풍경을 떠올리려고 애썼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떠올린 것들을 아빠는 수첩에 적곤 했다. 무엇을 적느냐고 물으면 아빠는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기록한다고 대답했다. 기억하지 않으면, 혹은 기록하지 않으면 인생의 모든 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듯이. 너무나 자잘한 것들이어서 잊지 않는다고 해도 그 쓰임새를 알기 힘든 일들까지고. 아침 아홉시마다 육안으로 관찰한 날씨, 신문에서 옮겨적은 최고깅노과 최저기온과 풍향과 풍속, 세계 각구의 헤드랑니 뉴스, 아침과 점심으로 먹은 음식과 반찬 들, 십원 단위까지 적는 소소한 지출 내역들......
쓸모를 알기 힘든 건 바람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모호하고 윤곽이 없이 시시때때로 모양을 바꾸는 상념들도 마찬가지였다. 길을 가다가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 아빠는 그런 생각들을 떠올렸고,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생각일지라도 수첩에 모두 적었다. 이뤄질 가능성이 없는 몽상들, 두 눈을 뜨고 바라보는 꿈들, 문장으로 만들 수 있을 뿐 아무런 현실성도 없는 소망들. 지금가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게 분명한데도 그런 몽상과 꿈과 소망을 수첩에 적는 이유가 나는 궁금했다. 그러자 아빠는 과학잡지에서 오려낸 기사를 내게 보여줬다. 기사 옆에는 상자 그림이 있었다. 그 상자 안에는 고양이와 청산가리가 들어 있다고 했다. 출세한 동기생을 소개하듯 아빠는 청산가리가 얼마나 우수한 독극물인지 내게 설명했다. 뿌듯한 표정으로 아빠는 "일 그램만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지." 라고 말했다. 기사에 따르면 청산가리를 담은 용기는 한 시간에 한 번, 50퍼센트의 확률로 부서진다고 했다. "용기가 부서지면 고양이는 반드시 죽는다." 라고 아빠는 말했다. 그토록 우수한 독약이라면 그렇겠지. 반드시 죽겠지. 나는 고양이가 불쌍했다.
"그렇다면 한 시간 뒤에 이 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아빠의 질문이었다.
"난센스 퀴즈인가요?"
"아니, 나름 진지한 질문이야."
나는 생각했다.
"안 죽었을 거예요."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둘 중 하나라면, 그쪽이 나았으니까.
"이건 누가 맞혀도 절반만 정답이야. 여기 있는 그림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거야."
나는 과학자들에게 붙잡혀 청산가리를 먹고 죽어야하만 하는 고양이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불쌍한 고양이가 있었다. 거기 그림에는 반은 죽고 반은 산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죽은 반쪽의 고양이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산 반쪽의 고양이는 여전히 서 있었다. 솜씨 좋은 무사가 단칼에 자른 것처럼 고양이는 둘로 나눠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요?"
내가 항의했다. 그러자 아빠가 대답했다.
"양자론의 세계니까."
그 말이 얼마나 멋지게 들리던지, 양자론의 세계란 과연 어떤 세계이기에 그런 일이 가능할까? 양자론의 세계에서는 내가 상자를 열어서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그런 상태로, 즉 절반은 죽고 절반은 산 상태로 존재한다고 한다.
"고양이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당신의 관찰이다."
아빠가 기사를 읽었다. 그 말이 얼마나 신기하게 들리던지. 꼭 새 발명품의 작동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아빠는 기사를 계속 읽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부터의 일이다. 만약 당신이 상자를 열었다가 살아 있는 고양이를 봤다면, 당신이 상자를 열었다가 죽은 고양이를 보는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된다. 즉 그건 가능했지만 실현되지 않은 일이다. 우주가 무한에 가깝다고 치자. 그건 모든 경우의 수가 다 일어나는 우주라는 뜻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주사위를 두 번 던져서 나오는 경우의 수는 모두 서른여섯 가지다. 만 번쯤 되풀이해서 주사위를 두 번 던지면, 우리는 그 경우의 수를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사위를 만 번 던질 때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모두 몇 가지일까? 그건 7781자리 숫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한하게 주사위를 만 번씩 던진다면 언젠가는 그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던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도 마찬가지다. 우주가 무한에 가깝다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다른 우주에서는 반드시 일어난다. 당신이 살아 있는 고양이를 본다면, 그 순간 다른 우주에서 당신은 죽은 고양이를 보고 있다."
그 기사를 읽은 뒤부터 나도 길을 걷다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멈춰 서곤 했다. 그럴 때 나는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먼산을 바라봤다. 그럴 때 나는 생각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들을 생각했다. '만약'으로 시작되는 일들을. 만약 키가 지금보다 십 센티미터 정도만 더 컸다면, 만약 재벌 2세로 태어났다면. 만약 미국 아이였다면. 안약 22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면. 만약 엄마가 있었다면. 만약 엄마에게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다른 생각들도 했다. 예컨대 야구부에 들어가 청룡기 고교야구 결승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한다던가 마침내 아빠의 올림픽복권이 당첨돼 우리가 르망을 타고 전국일주를 떠난다거나, 그럴 가능성은 많이 않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감미롭게 했다.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라도 해도 상관없었다. 그 어떤 일도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게 아주 황당한 몽상이라고 해도 나는 꿈구는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우주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 어떻게 해도 할 수 없었던 일들, 불가능한 일들을 나는 계속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양자론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까. 계속, 나는 쉬지 않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우주에 사는 나를 위해서. 다른 우주에서는 여전히 시장에서 과일을 팔고 있을 아빠를 위해서, 또다른 우주에서는, 어쩌면 거기서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을 엄마를 위해서. 그 가능성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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