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둘의 공통점은 섹스 파트너가 있다는 것이다. 한 녀석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시를 쓰고 다른 녀석은 시를 쓰며 카페를 운영한다. 그런데 카페를 경영하는 녀석의 시가 철학을 가르치는 친구의 시보다 훨씬 난해하다. 어쨌든 이 둘은 서로를 매우 싫어한다. 한때는 나와 함께 어울려 다니며 술추렴 깨나 했지만 다 옛날 일이다. 언젠가 내가 철학에게 그의 섹스 파트너에 대해 묻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섹스 파트너와 뭔가를 교환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 나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 교환하다니? 뭘? 전쟁 당사국들이 전쟁을 교환하지 않듯이, 바둑 친구들이 바둑을 교환하지 않듯이, 섹스 파트너들끼리도 섹스를 교환하지 않아. 나와 그녀는 뭔가를 교환하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낭비하기 위해 만나는 거야. 우리는 시간과 에너지를 함께 소비하지. 그러나 궁극적으로 낭비하는 것은 바로 섹스라는 관념이야. ‘나는 섹스를 한다’ 라는 무거운 관념을, 덤프트럭이 모래를 쏟아놓듯 훌훌 던져버리고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섹스 파트너라는 이름의 상자를 공유하고 있는 거야.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것을 섹스 파트너라고 부르기로 정한 거야. 그리고 실은 그 뚜껑을 열지 않아. 우리가 뚜껑을 열지 않는 한, 우리는 안전해”
철학과 만나 관념을 낭비하는 여자는 카페의 아내다.
“둘이 한 달에 몇 번이나 만나?”
철학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대중없어. 매주 만날 때도 있고 한 달에 한 번도 못 만날 때도 있어. 근데 그건 왜 물어?”
“난 모든 걸 궁금해하는 프루스트 형 소설가잖아 .근데 한 달에 한 번이라고? 그 날이 다가올 때면 환경미화원들이 장기 파업한 도시처럼 너의 고매한 정신 곳곳에 ‘섹스를 한다’ 라는 관념이 쌓여서 악취를 풍기고 있겠구나.”
철학이 맥주잔을 손으로 뱅글뱅글 돌렸다. 지독하게 기분이 나쁠 때 하는 짓이다. 한참을 그러더니 미간을 좁히며 삐딱하게 물었다.
“그러는 너는? 그 관념을 어떻게 처리해?”
“나는 관념이 아니라 정액을 처리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설가는 말이야, 현실적이어야 해.”
철학이 이의를 제기한다.
“그게 과연 그렇게 간단할까? 너는 관념에서 출발해 거기에 사실의 살을 붙여가는 일을 하잖아.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거기에 육체를 더하는.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떠들든 너 역시 관념을 먼저 처리해야 할 거야. ”
“소설은 그런 게 아냐. 매우 육체적인 거야. 심장이 움직이면 마음은 복종해. 우리는 시인이나 평론가와 다른 몸을 갖고 있어. 문학게의 해병대, 육체노동자, 정육점 주인이야.”
“너의 그 확신이 나는 불길해.”
누가 철학자 아니랄까봐 냉소적이기는.
언젠가 카페에게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너는 그 여자를 뭐라고 부르니?”
이제는 후진 양성에 전념하는 왕년의 프로레슬러처럼 생긴 카페는 여자 얘기를 할 때면 약간 수줍어하곤 한다.
“사실 우리는 서로를 별명으로 불러. 걔한테 내가 붙여준 별명이 백 개도 넘을 거야. 만날 때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거든. 무의미할수록 좋아. ‘나의 다리 부러진 의자’라고 부를 때도 있고 ‘매우 공허한 찐빵’ 이라고 부를 때도 있어.”
“헤이, ‘섹스 파트너’라고 부를 때는 없어? 장난으로라도? 아님 ‘섹파’같은 준말로라도.”
“요즘 어떤 엄마들은 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더라. 나는 그럴 때마다 그 엄마들이 어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 같아서 아슬아슬해. 아들이라고 부르는 순간, 엄마와 아들 사이에 어떤 완충지대도 없어지는 거야. 섹스 파트너라는 말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내 말은, 프라이팬에 뭘 구우려면 말이야. 먼저 기름을 둘러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서로 들러붙지를 않지.”
“잠깐, 그런데 그 여자, 뭐 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너한테 얘기해준 적 없는 것 같은데.”
유도신문은 나의 장기이지만 단련된 사람에게는 잘 안 먹힌다.
“알았어. 그럼 다시 물어볼게. 그 여자 뭐 하는 사람이야?”
“여군 장교야.”
“정말?”
“내가 주말마다 차를 몰고 강원도로 가. 근무지는 최전방이야. 좁은 동네라서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니까 그녀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변장 수준의 화장을 한 다음, 좀 더 후방에 있는 도시로 나와서 나와 접선을 하지.”
“그랬군.”
“난 어릴 때부터 유니폼을 입은 여자들이 좋았어.”
그의 몸짓이 더욱 수줍어진다.
“‘유니폼을 입은 여자’라는 말도 일종의 기름 같은 건가?”
“맞아. 덕분에 나는 ‘유니폼을 입은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로 살 수 있는 거지. 역시 소설가라 그런지 금방 이해하는군.”
“그 여자는 너와 만날 때에는 사복을 입지 않아?”
“물론 사복이지. 하지만 그녀가 나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왔다는 것. 그게 나를 흥분시킨다고. 다른 여자들은 옷을 ‘입고’ 남자를 만나러 오지만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오는 거야.”
자기 말에 취해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는 카페는 자기 아내가 철학과 주기적으로 만나 ‘섹스를 한다’라는 무거운 관념을 던져버리고 온다는 걸 모르고 있다. 고래로 이런 진실은 남편이 가장 늦게 알게 된다. 카페의 아내와 철학 역시 카페가 최전방에서 여군 장교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은 그저 카페가 낚시에 미쳐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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