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희를 통해 매사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는 관계, 마음 편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인희와 내가 다시 만나기까지 그사이 목포시의 여학생들 사이에 일어났던 변화를 어떻게 그려 볼 수 있을까? 처음에 그건 말하자면 피어싱 같았다. 뺨과 귀 사이에 있는 조약돌 모양의 연골을 뚫는 피어싱처럼 처음엔 충격적이지만 자꾸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독특하고 예뻐 보였다.
토요일 오후에 은혜가 중앙고등학교 교복 입은 언니랑 손을 잡고 가는 걸 4반 지연이가 봤대. 진짜? 은혜도? 걔 원래 안 그랬잖아? 무슨 우리 학교 절반이 이반이냐? 은혜, 이반 싫어했는데. 피어싱이 퍼져 나가는 무리에서 후발 주자가 다소 멋쩍게 머리를 넘기며 사실 자신도 일요일에 시내 액세서리 가게에서 연골을 뚫었다고 털어놓듯이 옆 반 아이와 오늘로 일주일째라고 털어놓는 친구의 얼굴에도 그런 종류의 수줍음이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학교마다 셀레브리티 커플이 있었다.
중학교 때 우리 학교에는 진영과 수미라는 유명한 커플이 있었다. 하교할 때 교문 근방에는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곤 했다. 진영과 수미를 실제로 보고 싶어 먼발치에서나마 보려고 찾아온 애들이었다. 대구에서 고등학생 언니들이 온 적도 있었다.
진영과 수미는 늘 후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학생들은 일일 연속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두고 그러듯 둘에 관해 이야기했다. 둘 사이의 질투와 다툼에 대해, 애정 전선의 미묘한 기류에 대해. 수미가 진영에게 헤어지자고 했대. 너무 힘들다고. 너를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할 것 같다고. 그러니까 진영이가 어쩐 줄 알아? 아, 세상에. 그 이야기를 들려준 아이는 수미의 친한 친구 ㅡ 아이들은 그 애를 수미의 시녀라고 불렀다 ㅡ 이혜정이었는데, 이 대목에서 전율에 휩싸여 두 손을 기도하듯 맞잡았다. 진영이가 수미 어깨를 양손으로 딱 잡고 이랬다. 너,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얘들아, 수미 안 다치게, 수미 다친다. 수미 다쳐.
-우리 반에도 커플이 있었다. 학기 초부터 사귀었는데 2학년에 올라갈 때까지도 사이가 변함없었다. 다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도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눈짓을 해 둘이 밖으로 나간다든지 하는 일들이 있었다. 둘만 있을 때는 한쪽이 다른 쪽을 '아가'라고 부른다고 했다. 한쪽이 씀씀이가 헤펐기 때문에 아가가 두 사람의 용돈을 맡아서 관리했다. 우르르 매점에 가서 도넛과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때면 아가가 지퍼 달린 자그마한 지갑에서 두 번 접힌 천 원권을 꺼내 두 사람분의 돈을 치렀다.
가끔 그 애들이 부러웠다. 그건 종교가 없는 사람이 가끔 신자들을 부러워하는 심리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1초도 빠짐없이 나를 주시하고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주는 신이 있으면 사는 일이 한결 든든하지 않을까.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는 상관없이. 그걸 믿는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는 눈동자 같은 신의 존재를 느끼며 힘을 내어 하루하루 살아갈 테니 말이다.
-토끼야, 나와서 상 좀 가져가거라.
-그때 나는 그것이 그 애 자신의 표현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아주 최근에 들어서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난 짧은 머리와 힙합 바지를 자동적으로 남성에 대한 모방이라고 여겼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걷는 인희의 걸음걸이를 보고 남자를 흉내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남성적이라고 말해지는 특성들이 당연히 남성들에게 속하는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여자들도 짧은 머리를 원할 수 있고, 그것이 ㅡ 당연히 ㅡ 그녀 자신의 표현일 수 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라는 표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차린 뒤로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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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사랑>은 사랑의 모양에 대해 이야기한다. '로맨스'가 아니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최은영의 소설이 떠오른다. 뭉근하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씁쓸하고 진한 사랑들. 나는 청소년 때 아이돌과 팬픽에 빠졌었지만, 이반은 아니었다. 우리 학교에도 이반이 있었지만 내가 이반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더 넓은 세상의 다양한 이들을 만나면서 내가 퀴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게 되었고, 퀴어의 사랑을 경험한 뒤로 그 전으로는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고 싶어졌다.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세상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무궁무진했다. 나는 100살 넘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작은 (큰) 꿈을 꾸게 되었다.
자신이 사랑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 소설이 마음에 들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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